상표 등록 누적 건수 10년새 2배 증가
류정 기자 well@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지난 1일 출범한 '현대차IB증권'(구 신흥증권)은 보름 만인 16일 법원으로부터 "기존의 '현대증권'과 헷갈리니 상호를 바꾸라"는 결정을 통보 받았다. 비슷한 이름으로 소비자를 현혹시켜 기업 간 경쟁의 룰을 흐려놨다며 이 이름을 쓰지 못하게 해달라는 현대증권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졸지에 이름을 잃게 된 '현대차IB증권'은 현재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한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이끄는 '현대증권'은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이 신흥증권을 인수하자, '현대IB투자증권' '현대M증권' 등 '현대'가 들어간 증권업 상표 20여 개를 미리 '싹쓸이' 출원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최근 들어 치열해지는 '상표권 분쟁'의 대표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브랜드(Brand)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한 기업들이 '자기 얼굴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학원도, 음식점도 '브랜드 가치' 주장

수도권에 10여 개 가맹점을 거느린 대형 입시학원 '청솔학원'은 
서울 대치동에서 '대치 청솔학원'이란 간판을 달고 영업하던 한 보습학원을 상대로 가처분신청을 내서 이겼다

또 등산용품 업체 'K2 코리아'는 수년째 'K-2' 'K-2 Mastin' 등 유사품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K2'가 세계에서 2번째로 높은 산봉우리를 뜻하는 지명(地名)이자 고유명사라는 이유로 '상표등록'이 안 되는 점을 이용해 유사품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기 때문이다. K2측은 여러 회사들을 상대로 부정경쟁행위 중지 소송을 벌이고 있다.

잘나가는 맛집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명동에서 '칼국수'로 명성을 쌓아온 음식점 '명동교자'는 서울 시내에 들어선 '명동교자칼국수' 집이 유사 상표를 사용하고 있다며 소송을 내,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상표권 소송의 승패 기준은 크게 2가지다. "기존 상표의 인지도와 점유율이 얼마나 높은가"와 "기존 상표와 얼마나 헷갈리는가"다. 원조(元祖)냐 아니냐를 떠나 누가 먼저 상표 등록을 해서 그 브랜드를 키웠느냐가 승패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해외명품들, '유사품'과 전쟁

해외 명품들의 국내 짝퉁(유사제품)을 상대로 한 소송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계속돼 온 일이다. 일부 외국 기업들은 미리 국내에 상표 등록을 해놓고, 유사품을 견제하고 있다.

지난 2005년 
이탈리아 명품 '구찌(GUCCI)'가 우리나라 법원에서 '파올로구찌(PAOLO GUCCI)'와 싸워 이긴 이야기는 유명하다. 당시 대법원은 '파올로구찌'가 구찌 가(家)의 3세가 만든 브랜드이긴 해도, 엄연히 다른 원조 '구찌'와 혼동을 일으킨다고 판단했다.

또한 
스위스업체가 아프리카 마사이족이 걷는 법을 적용해 개발한 특수신발 브랜드 '마사이워킹'은 '마사이족워킹슈즈' '마사이족워킹센터' 등의 이름을 쓰는 국내 업체를 상대로 낸 상표권침해금지소송에서 이겼다. 법원은 '마사이워킹'이 보통명사이긴 하지만, 해당 스위스업체가 특허등록하고 홍보하면서 유명해진 브랜드임을 인정했다.

특허청에 따르면, 대한민국 출범 후 2007년까지 누적된 상표등록건수는 91만여 건. 1997년 43만 건에서 10년 사이 두배 이상 증가했다. 고영회 변리사는 "상표권에 관한 '국제분쟁'은 그만큼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졌고 국제교류가 늘었다는 걸 방증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