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아니라 뒤에 신경 써야 한다니, 요즘 이게 스트레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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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정희(33)씨는 여름철 옷을 사면서 이런 고민에 빠졌다. 주변에서 '요즘은 앞보다 뒤가 더 중요하다'고들 해서다. 자신이 옷을 입었을 땐 어떤지 잘 모르는 뒷모습까지 신경 써야 하는 요즘이다. 옷뿐만 아니다. 디자인을 앞세우는 다른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자동차, TV, 휴대전화 가릴 것 없이 뒷 모습 꾸미기에 여념이 없다. 왜 버려졌던 뒷모습이 디자인의 화두로 떠올랐을까. 지금 당신의 뒷모습은 어떤가. 이제 뒤태를 신경 써야 진정한 스타일 리더다. 

'홀터넥' 원피스가 대세 

패션 디자이너 우영미씨는 올 봄여름 상품으로 소매가 없는 피케(골 지게 짠 면 섬유로 여름용 의류에 주로 쓰임) 셔츠를 만들었다. 정면은 단순한 피케 셔츠지만 뒤는 트렌치 코트처럼 보인다. 올 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프레타 포르테(기성복) 컬렉션에서 발표한 작품이다. 그는 "뒷부분 화폭이 더 넓다"며 "셔츠 앞쪽엔 목선도 있고 단추도 넣어야 한다. 옷을 더 꾸미고 싶지만 앞면은 공간이 부족한 셈이다. 하지만 뒤는 넓어서 디자인의 상상력을 발휘하기 좋다"고 설명했다. 최근 패션에선 '옷은 평면이 아니라 입체'라는 것을 강조하는 '구조적 디자인'이 인기다. 화려한 프린트나 반짝임이 가미된 원단처럼 평면적인 것에서 벗어나 건축 구조물처럼 천의 입체감을 살리는 기법이다. 바로 우씨의 피케 셔츠 뒷면에서 볼 수 있는 트렌치 코트 장식 같은 것이다. 우씨는 "게다가 앞면엔 얼굴이란 복잡한 요소가 있다. 복잡한 얼굴 아래 또 복잡한 옷의 디자인을 보태면 혼란스럽지만 뒤는 그렇지 않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미국 뉴욕 컬렉션에 참가하는 강진영·윤한희 2명의 패션 디자이너도 이런 흐름에 동참했다. 이 부부 디자이너가 만든 오즈세컨은 뒤쪽 디자인을 강화한 베스트(조끼)를 내놨다. 얇은 티셔츠에 겹쳐 입어 여름철 멋내기에 제 격인 이 베스트는 앞은 평범하지만 뒤에는 X자를 화려하게 넣어 마치 뒷면에 큰 나비가 앉은 것처럼 꾸며졌다. 미샤의 원피스는 등 쪽이 'V'자로 깊이 파여 있고 바로 아래인 허리 부분에 화려한 셔링(부드러운 천에 주름을 잡아 입체적으로 보이게 꿰맨 것)이 들어가 있어서 뒷사람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여름 멋쟁이의 필수품인 원피스에선 특히 어깨를 살짝 드러내고 목 뒤로 끈을 묶는 형태의 '홀터넥' 스타일이 대세다. 시원하게 드러나는 등 위쪽에 홀터넥의 리본이 자연스럽게 흘러 내려 다시 한 번 뒤태를 강조하는 모양새다. 의류뿐만 아니라 구두도 '뒤태 강조형'이 인기다. 올 상반기 패션 리더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것 중 하나인 프라다의 하이힐이 그렇다. 

여성 소비자가 더 열광 

디자인 경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패션분야뿐만 아니라 IT나 가전에서도 디자이너들은 뒷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본래 뒤태 열풍은 산업 디자인에서 먼저 불었다. 지난해 처음 선보인 볼보의 2007년형 해치백 승용차 C30이 대표적이다. C30은 자동차 뒷 부분을 전부 유리로 만들었다. '글라스 테일 게이트'라는 뒷모습 디자인은 지난해 상도 많이 받았다. 권위 있는 산업 디자인상인 '국제 레드닷 디자인 어워즈'에서 차량 부문 제품 디자인상을 받았고 '2007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오토니스 카 디자인 어워드'에선 '가장 멋진 모델'로 선정됐다. 

2006년 11월엔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인 '골든 스티어링 휠'도 수상했다. 후면 유리창을 뒤 범퍼 바로 아래쪽까지 끌어내린 이 모델은 앞 모습보다 뒷부분 디자인에 더 신경 쓴 대표적인 사례다. 

모토로라에서 올해 3월 출시한 '레이저 스퀘어드 럭셔리 에디션'은 디자인 사각지대였던 뒷면을 확 바꿔 인기몰이 중인 모델이다. 일명 '베컴폰'으로 불리는 이 디자인은 배터리 뚜껑이 달린 뒷면을 뱀 가죽 무늬처럼 장식하고 가운데엔 18K 금으로 제작한 로고를 넣었다. 

TV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올해 미국 소비자 가전쇼(CES)에서 '인텔리전트 패션 아이콘'이란 평가를 받은 LG전자의 엑스캔버스 스칼렛도 후면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옆면과 뒷부분을 빨간색으로 마감해 평소 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 TV 디자인에서 철저하게 소외됐던 후면부에 디자인 요소를 도입한 것은 LG전자 TV 부문에서 이 제품이 처음이다. 디자인에 참여한 박세라(37·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책임연구원은 "뒤태에도 신경 쓴 디자인을 처음 기획했을 땐 회사 내부에서도 '왜 안 보이는 데 투자를 하느냐'며 반대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전엔 뒷부분에 디자인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마무리만 잘하면 되는 부분이었는데 이제는 후면도 중요한 디자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남성에 비해 더 감성적인 여성 소비자가 IT나 자동차 분야에서도 더욱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앞보다는 덜 신경 썼던 뒷부분까지 세심하게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연구원의 설명처럼 남성 소비자가 대부분이었던 볼보의 자동차는 C30에서 뒷부분을 신경 쓴 디자인으로 여성 고객을 사로잡았다. C30의 구매자 중 여성 비율은 절반에 가까울 정도다. 


중앙일보 강승민 기자 < quoique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