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들 노골적으로 걸고넘어지는 비교광고 각광… 인지도 높이는 특효약이지만 독약 될 수도 
경쟁사 폴로·빈폴을 직접 겨냥한 헤지스 광고가 장안의 화제다. 참을 수 없는 ‘비교’의 유혹에 비교광고가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굿바이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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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패션의 트래디셔널 캐주얼 브랜드 ‘헤지스’(HAZZYS) 광고 카피에 등장하는 ‘폴’은 사람 이름이 아니다. 헤지스의 경쟁 브랜드인 ‘빈폴’과 ‘폴로’를 은유하는 단어다. 

지난 10월 하순에 전파를 타기 시작한 헤지스 광고는 두편으로 구성돼 있다. 각각 폴로, 빈폴을 겨냥한 비교광고다. ‘폴로 편’에서는 폴로 복장을 한 남성이 말을 타고 지나가다 헤지스 매장을 발견한다. 그는 말에서 내려 헤지스 매장으로 들어간다. 화면이 바뀌면서 헤지스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말을 놓아둔 채 걸어간다. 남겨진 폴로 모자와 스틱이 비에 젖는 가운데, 카피가 뜬다. “굿바이 폴”. ‘빈폴 편’도 같은 구성이다. 이번에는 한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헤지스 매장으로 들어갔다가 자전거를 버려둔 채 걸어간다. 그리고 “굿바이 폴”. 

비교인가 비방인가… ‘굿바이 폴’논란 

자전거가 들어 있다는 점을 활용했다. 카피의 ‘폴’도 빈폴과 폴로의 ‘폴’에서 따왔다. ‘굿바이 폴’은 폴로와 빈폴에 굿바이하고 헤지스를 입으라는 뜻. 헤지스 광고는 “비교인가, 비방인가” 논란을 낳으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헤지스 광고가 나가자 빈폴이 발끈했다. 11월호 패션 잡지에 빈폴 광고 바로 뒤에 헤지스 광고가 실리자 빈폴의 제작사인 제일모직은 더욱 자극을 받았다. 빈폴의 광고대행사쪽은 11월 중순 잡지사에 “이같은 일이 다시 발생할 경우 광고 대행 관련 업무를 중단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비교광고가 아니라 비방광고라는 것이다. 이번에는 LG패션이 “이같은 압력은 비도덕적 행위”라며 반발했다. 

비록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비교광고의 ‘약발’은 세다. LG패션쪽은 광고가 나간 뒤 하루 홈페이지 방문자 수가 광고 이전 1500명에서 광고 이후 5천명까지 늘었다고 밝혔다. 2000년 출발한 후발주자로, 트래디셔널 캐주얼 브랜드 시장에서 3~4위에 머무르고 있던 헤지스로서는 일단 ‘스캔들’을 만드는 데 성공한 셈이다. 우경하 LG패션 대리는 “헤지스를 빈폴, 폴로와 함께 ‘빅3’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광고전략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자평했다. 목표한 성과를 이뤘지만, 딜레마도 있다. 강동민 LG패션 과장은 “우리 브랜드가 두 브랜드보다 취약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가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면서도 “허장성세를 부리기보다는 솔직한 광고로 승부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비교광고는 후발주자의 인지도를 높이는 광고 기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에는 배우 변정수씨가 헌 차에 붙어 있던 번호판을 떼어내 새 차에 붙이며 “쓰던 번호 그대로 하나폰으로 바꾸세요”라고 권하는 하나로 텔레콤 광고도 방송을 타고 있다. 

11월에 런칭된 대한생명의 광고도 비교광고에 속한다. 이 광고는 대한생명 63빌딩을 비추면서 시작한다. 대한생명 빌딩 위로 양희은씨의 목소리가 얹힌다. “뜨겁다. 2등은 뜨겁다.” 건물 속으로 들어간 카메라는 대한생명 직원들이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비춘다. 그리고 다시 카피가 뜬다. “저 뜨거움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아~ 고객.” 마지막으로 자막이 뜨며 “고객이 1등인 나라, 대한생명”으로 끝난다. 이 광고는 2등인 만큼 1등보다 더욱 ‘뜨겁게’ 일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광고의 고전인, 에이비스(Avis)의 2등 캠페인과 맥락이 닿아 있다(상자기사 참고). 이 광고는 또한 대한생명이 교보생명과 서로 생명보험업계 2등이라고 다투는 가운데, 자신이 2등이라는 사실을 기정사실화하는 효과도 노리고 있다. 비록 간접 비교광고지만, 이중의 칼날을 지닌 광고인 것이다. 

비교광고는 2001년 9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비교광고 심사지침’을 마련하면서 허용됐다. 그 이전에는 사실상 비교광고가 금지돼 있었다. 비교광고를 허용하는 지침이 확정됨에 따라 경쟁회사 또는 경쟁상품을 직접 거명해 자기 상품의 유리한 부분만을 강조하는 광고가 가능해졌다. 현대자동차는 공정위 지침이 나오자마자 ‘1위에는 이유가 있습니다’라는 광고로 자사의 EF쏘나타가 SM5에 견줘 우수하다는 비교광고를 내보냈다. 그 뒤에도 비교 광고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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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파스는 네이버, 네이버는 다음 공략 


지식발전소의 검색포털 ‘엠파스’는 비교광고를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한 사례로 꼽힌다. 검색포털의 후발주자였던 엠파스는 1999년 ‘야후에서 못 찾으면 엠파스’라는 광고를 내보냈다. 당시 검색포털의 선두주자였던 야후에 견줘 엠파스의 성능이 뛰어나다는 메시지였다. 홍정권 지식발전소 홍보팀장은 “마케팅 비용이 넉넉지 않았던 엠파스로서는 저비용 고효율의 광고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 광고는 엠파스의 인지도를 단숨에 높여 시장 진입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엠파스의 비교광고는 야후에서 끝나지 않았다. 엠파스는 2003년 ‘지식인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른다’는 광고를 방송에 내보냈다. 네이버의 ‘지식검색’을 겨냥한 비교광고였다. 하지만 부작용이 나타났다. 엠파스 광고를 네이버 광고로 오인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미 ‘지식’이라는 말을 네이버가 선점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허성남 네이버 마케팅 팀장은 “엠파스가 광고를 할수록 네이버가 덕을 보았기 때문에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NHN의 네이버는 비교광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비교광고를 만들기도 했다. 네이버는 2004년 봄, 네이버 카페를 열면서 다음 카페를 겨냥한 비교광고를 제작했다. 배우 전지현이 “다음에 잘하겠다는 말 믿지 말랬잖아”라고 말하는 광고였다. 당연히 ‘다음’은 인터넷 카페 1위인 다음 카페를 뜻하는 말로 들렸다. 허성남 팀장은 “광고를 전후해 네이버 카페 가입자 수가 20만명에서 400만명으로 늘어 다음과 양강 체제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단순히 기업 혹은 제품 이미지를 비교하는 수준을 넘어 제품의 속성을 비교하는 광고도 전파를 탔다. KT의 초고속 통신망 ‘메가패스’는 2003년 통신망의 속도를 비교하는 광고를 내보냈다. 이 광고는 둘로 나뉜 화면에서 두 선수가 달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한명이 여유 있게 먼저 골인한다. 화면이 바뀌면서 인터넷 사용자가 옆의 사용자에게 묻는다. “아직도 하나?” 메가패스가 하나로 통신보다 빠르다는 것을 암시하는 광고였다. 

단순히 기업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비교광고와 달리 제품의 속성을 비교하는 광고는 더욱 엄격한 심의 잣대가 적용된다. 메가패스 광고를 제작한 제일기획 최준환 과장은 “심의를 통과하기 위해 메가패스의 속도가 경쟁사에 비해 빠르다는 자료를 수없이 제출해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메가패스는 더 이상 비교광고를 내보내지 않고 있다. 비교광고의 남발이 기업 이미지를 실추시킬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비교광고는 짧은 기간에 ‘약발’을 받는 특효약이기는 하지만, 남발할 경우 기업 이미지를 망치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이명천 중앙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비교광고는 속도처럼 계량화가 가능해서 비교 기준이 명확한 제품군에서 많이 쓰인다”며 “한국의 비교광고는 아직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광고에 한정돼 있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품목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법적인 제약 많아 아직은 은유수준 

비교광고에 대한 심의기준이 점점 ‘느슨해’지고 있지만 아직도 제약이 많은 편이다. 심의기준상 부분적인 비교로 전체적인 우위를 주장해서도 안 되고, 사실이라 하더라도 경쟁사를 비방해서는 안 된다. 약품광고 등은 아예 비교광고 자체가 불가능하다. 아직 제약이 많고, 비교광고를 터부시하는 문화 때문에 한국의 비교광고는 은유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전체 광고의 3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일반화된 비교광고는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에서도 점점 확산되고 있다. 체면 차리기 어려울 만큼 시장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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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시가 코카콜라를 부른 까닭

비교광고에 대한 규제 수준이나 그 표현 방식은 민족성, 문화적 특성에 따라 나라별로 다르다지만 전세계적으로 비교광고는 증가하고 있다. 영연방 국가는 일찍부터 비교광고를 허용했고, 미국에서도 1971년에 본격화됐다. 유럽은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금지된 탓에 독일 같은 나라에선 1998년에야 비교광고가 가능하게 됐다. 그러나 들쭉날쭉한 규제 수준을 보이던 유럽 각국들도 유럽연합의 출범 이후 비교광고를 허용하는 추세이며, 겸양의 미덕을 강조하는 동양권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사실 업계의 영원한 맞수들이 비교광고의 기회를 쉽게 놓칠 리 없다. 21세기 광고전쟁사에 남을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한판 승부에서 2인자 펩시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건 ‘비교광고’다. 누가 봐도 펩시콜라와 코카콜라임을 알 수 있는 자판기 두대가 광고 안에 나란히 놓여 있다. 하지만 흔적은 펩시콜라 앞에만 남아 있다. 광고는 “사람들은 펩시만 찾아요”라고 외친다. 이 외침은 펩시콜라의 ‘배달원’ 광고에선 더 직접적이다. 코카콜라 배달원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결국 참지 못하고 펩시콜라를 코카콜라 캔에 옮겨붓는다. 정황과 심리를 이용해 “코카콜라 직원조차 거부할 수 없는 펩시콜라의 맛”이라는 직격탄을 날린다. 

세계적인 화물운송회사 페덱스 익스프레스(FedEx Express)의 광고도 만만치 않다. 페덱스 배달 상자에는 또 다른 상자가 있는데, 보일락 말락 한 문구는 다름 아닌 디에이치엘(DHL). 경쟁업체인 DHL조차 페덱스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재치 있게 담아냈다. 유쾌함으로 포장한 자부심이 드러난다. 

렌터카업체 에이비스(Avis)가 1960년대 중반에 사용한 유명한 카피 “Avis is only No.2 in rent a car”(에이비스는 렌터카 업계에서 2위에 불과합니다)도 비교광고의 일종이다. 최상급이 아닌 비교급을 쓴 이 광고에서 ‘No.1’이 허츠(Hertz)라는 건 미국인이라면 다 안다. 물론 에이비스의 광고가 여기서 멈출 리 없다. “We try harder”라는 말과 함께 업계 2위인 자신들이 어찌 노력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호소했고, 이 캠페인의 성공 덕분에 에이비스는 광고 집행 2개월 만에 적자를 상당량 해소했다. 

조사와 실험에 근거하여 소비자의 뇌를 공략하는 직접적인 비교광고와 달리 이처럼 간접적으로 접근한 감성광고는 소비자의 흥미를 유발하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부드럽게 올린다. 아슬아슬한 광고표현이 주는 재미는 전세계 공통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