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궁궐을 지키던 상상 속의 동물 '해치(??)'를 서울의 새 상징으로 추진키로 했다. (본지 5월 2일자 보도)


해치의 등장과 함께 뒤늦게 떠오른 캐릭터가 1998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시의 상징인 호랑이 '왕범이'다. 보도 뒤 '왕범이의 잃어버린 10년'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만 10살이 되도록 "그런 캐릭터가 있었나"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잊혔기 때문이다.

왕범이의 탄생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시는 CI개발이 필요하다며 시민여론을 조사하고 캐릭터 자문위원회를 만들었다. 1998년 발표된 캐릭터가 왕범이였다. 왕범이를 만든 사람이 디자이너 김현(디자인파크 대표)씨다. 

김씨는 88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와 서울의 산과 해, 강을 형상화한 서울시 휘장, '하이 서울(Hi Seoul)' 슬로건을 만든 디자이너다. 그는 "캐릭터 개발을 의뢰 받은 뒤 올림픽으로 서울의 대표 이미지가 된 호돌이의 아들로 왕범이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왕범이라는 이름은 인왕산의 '왕'과 호랑이의 '범'이 합해진 합성어다. 한자어 왕(王)과 우두머리, 으뜸의 뜻을 지닌 '왕'이 들어가 '세계적인 대도시'를 지향한다는 의미도 있다.

좋은 의미였지만 왕범이는 알려지지 못했다. 서울시 상징개발 용역을 맡은 한국디자인단체총연합회에 따르면 서울시민의 90%가 왕범이가 있었는지를 몰랐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홍보 부족을 이유로 꼽고 있다. 

김현씨는 "시의 담당자가 계속 바뀌어 왕범이를 알리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했다. 상징 캐릭터가 자리잡으려면 문화 콘텐츠로 확장될 수 있는 입체적 접근이 있어야 했지만 왕범이는 시민의 삶과 연관된 홍보 프로그램이 없었다. 왕범이의 불운인 셈이다.

'호돌이의 아류'라는 지적도 있다. 새로운 서울 상징체계 개발 사업에 참여한 인사는 "캐릭터는 고유성을 가져야 하는데 왕범이는 호돌이와 태생적으로 너무 비슷하다"며 "호돌이는 올림픽이 있었지만 왕범이는 개성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서울시 디자인서울총괄본부 관계자는 "맹수인 호랑이를 친근하게 표현하기 위해 개구리 왕눈이처럼 눈을 크게 표현했지만, 이로 인해 가볍게 희화화됐다는 의견도 있다"며 "캐릭터 본래의 물성을 잃어버린 것이 아쉽다"고 했다.

'호랑이가 한국적인 동물인가'라는 문제도 있다. 호랑이는 다른 나라에도 있기 때문에 '한국만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호랑이의 나라'라고 일반화하기에도 논리적 비약이 있다. 왕범이의 실패는 해치에겐 행운이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