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갖을 수 없는 카드…"난 남들과 달라"

지난 2005년 연회비 100만원의 신용카드가 출시된다고 했을 때 이 실험이 성공적일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매년 1~2만원도 아까운 마당에 과연 100만원이나 회비를 지불하며 가입하려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하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현재 이 카드는 100만원도 모자라 200만원까지 연회비가 껑충 올라간 상태다. 기존 플래티늄 카드와 달리 심사단계에서 60~70%까지 거절될 정도로 가입조건이 까다로운 편이지만 회원수는 이미 2000명을 넘어섰다. 

이른바 가입하고 싶어도 아무나 가입할 수 없는 현대카드 `더 블랙(Hyundai Card the Black)`, 과연 이 카드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들 회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 월평균 카드 1000만원 이상.. 카드는 곧 `신분증` 

사실 블랙은 마케팅적인 면에서 볼 때 철저히 디마케팅(demarketing)을 추구한 케이스다. 다른 카드사들처럼 가입자수 확보에 나서기보다는 오히려 가입자수를 소수로 줄이고 있기 때문. 

상품 개발이 시작되던 2003년 당시만 해도 금융업계에서 상위 5%를 대상으로 하는 VIP 마케팅은 다소 생소한 개념이었지만 현대카드는 한단계 더 나아가 상위 0.05%의 시장에 집중, 2005년 금융업계 최초로 VVIP 카드상품 `더 블랙`을 출시했다. 이들이 말하는 0.05%란 단순히 재산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직업을 비롯한 사회적인 명성 등 다양한 조건이 갖춰져야만 한다. 

이들 0.05%의 블랙 회원들은 카드 사용패턴이나 라이프 스타일 등에서 분명 일반 사람들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단 월 평균 카드 사용금액이 업계 평균의 20배를 넘어선다. 현대카드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블랙 회원들의 매달 사용금액은 평균 1000만원 이상으로 업계 평균 약 50만원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자주 찾는 유통점간에도 차이가 있다. 현대카드 일반 회원들이 보통 대형할인매장(55%)이나 슈퍼마켓(10%)을 찾는 반면 블랙 회원들은 백화점(66%)과 면세점(20%)을 주로 찾는다. 대형할인매장을 찾는 비율은 5%에 불과하다. 

자동차 할부금(13%)을 갚기 바쁜 일반인들과 달리 블랙 회원들은 보통 `식(食)` 분야(21%)에 카드를 이용하며 전체 카드 사용내역 중 91%는 일시불로 결제한다. 이들은 또 항공(13%)과 골프(10%), 호텔(8%) 등 문화 생활에 대한 소비가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실제 이들의 여행 중 14%는 해외 여행으로 일반회원(1%)의 14배 수준이다. 

카드에 대한 취향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블랙 회원들은 카드를 단순히 지급결제 수단으로 보기보다는 자신을 대외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상징적인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국내 최고의 VVIP임을 증명하는 신분증과 같은 의미로 생각하는 것이다. 

◇ `몇 명`보다는 `누구`에 초점 

하지만 실제 이들 VVIP 고객들은 카드사 입장에서 볼 때 그리 좋은 수익성을 안겨주는 집단은 아니다. 명품과 VVIP 라이프 스타일에 익숙한 이들에 맞추기 위해서는 그만큼 특화된 혜택과 서비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입 초기 이들에게 제공되는 패키지만도 400여만원에 달한다. 이외 루이비통의 CEO 이브 카셀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Time for the Black` 시리즈를 계속 추진해 나가는 등 매년 투자비용이 만만찮다. 

얼핏 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법도 하지만 카드사가 블랙 회원들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의 관리를 통해 업계 내 프리미엄 이미지를 쌓아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후발주자인 현대카드로서는 블랙 카드를 통해 프리미엄 시장을 선점함으로써 우량 고객들을 대거 확보해 나간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실제 블랙 회원들은 매달 1000만원이 넘는 카드를 사용하고 있지만 카드 연체율은 0%에 가깝다. 임직원명의 법인카드로 발급받았던 임원들이 회사 퇴직으로 해지 신청하는 것을 제외하면 카드 해지율도 사실상 제로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글로벌 경기 침체에서도 이들 그룹은 꾸준히 월 평균 1000만원 이상을 유지하는 등 사용액에 있어서도 큰 변동이 없는 편이다. 결국 이들은 현대카드 내 우량 고객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블랙 카드가 출시된 이후 현재 다른 카드사들도 VVIP를 대상으로 하는 상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현대카드 측은 `몇 명`보다는 `누구`를 유치하느냐에 더 초점을 맞춘다는 계획이다. 사실 가입자수가 늘어날수록 카드 나름의 희소가치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최대 9999명이라는 자체 마지노선을 설정해 놓은 것도 바로 이 때문. 

업계 최초로 VVIP 시장에 모험을 걸었던 현대카드가 미국 `아멕스 블랙 센트리온`처럼 국내 시장에서 `블랙` 돌풍을 이어가며 VVIP 시장 강자 자리로 자리매김할지 업계 관심이 더욱 모아지고 있다. 

[정나래 기자]